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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툰 저자극 학원물의 반란 <셧업앤댄스>, 소품 같은 웹툰의 낭만과 유머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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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50회 작성일 24-05-2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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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규모가 작은 예술작품을 '소품'이라고 부른다. 크기가 작은 그림도 소품이고(ex, 빈센트 반 고흐의 단색 스케치), 길이가 짧은 곡도 소품이다(ex, 프레데리크 쇼팽의 전주곡과 야상곡). 소품 같은 영화들도 있는데, 외적으로는 러닝타임이 별로 길지 않다든가 제작비가 최소한으로 들어간 작품, 또 등장인물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배경의 이동이 적은 영화들을 아마 소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적인 측면에서 소품 같은 영화라고 한다면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일상적이며 소소한 사건 위주로 풀어가는 작품들을 이런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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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 작가의 <셧업앤댄스>도 소품 같은 웹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한 사립고등학교가 배경이고, 처음 시작부터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그룹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온다. 주인공도 5년차 아이돌 연습생이었다가 오디션 프로그램 탈락 후 학교로 돌아왔으며, 주요 등장인물들 역시 고등학생과 선생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이다. 이 웹툰은 딱히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기보다는 비교적 일상적인 얘기가 많은 작품이다. 그림체도 특별히 정교하거나 채색이 미려하지는 않지만, 그 대신 번뜩이는 재치와 속도감 있는 연출로 술술 잘 넘어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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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셧업앤댄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90년대와 2000년대 한국에서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그래서 지금 이들의 나이는 실제로 50세 내외인데, 작가가 작품 속 고등학생들에게 굳이 왜 이런 작명을 했는지 좀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현재의 10대와 20대는 이런 뮤지션들을 거의 알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웹툰의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도 약간 레트로적인 감성이 묻어있는 것 같다. 각 사건들만 보면 분명히 최신 소재에 기반하고 있는데, 하나씩 찬찬히 뜯어보면 결국 10~20년 전의 정서가 알게 모르게 스며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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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너 나 할 것 없이 살벌한 분위기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이 어설프게 에어로빅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어리숙한 어른들이 벌이는 웃기는 음모도 마찬가지다. 90년대와 2000년대 그 가수들이 활동했을 때라면 몰라도, 2020년에는 왠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핵심 사건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해프닝처럼 터진다. 게다가 이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 결론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갈등, 언젠가 봤을 법한 장면 같은 것들이 작품 곳곳에 깔려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셧업앤댄스>는 중간에 맥이 빠진다거나 김 새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레트로한 분위기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윤상, 조규찬, 정재형, 유희열이라는 이름이 정말 의도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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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혼자서 이런 생각까지 해봤다. 소품에 가까운 이 작품의 성격과 전반적으로 담백하고 숙성된 분위기 그리고 2020년에 그려지는 웹툰에서는 웬만하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몇몇 오브젝트와 행태(특히 에어로빅부 선생을 표현하는 몇 가지 설정과 액션에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를 감안할 때, 혹시 이 웹툰은 예전의 구상을 현재에 맞게 재구성한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 그만큼 <셧업앤댄스>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보편적으로 다양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 만한 코드들을 여기저기에 심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듯싶다. 게다가 기본 장착된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유머러스함 또한 이 작품의 커다란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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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낄낄 웃게 만드는 탁월한 유머와 함께, 이 웹툰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심각하고 결정적인 악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학교폭력 가해자가 등장하고 그로 인해 커다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갈등은 치명적인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 그친다. 마치 B급 코미디 영화의 악당처럼 <셧업앤댄스>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는 명확한 제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여느 학원폭력물과는 다르게, 폭력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이고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선정적인 학원폭력물이 어디에나 널려 있는 현시점에서 이는 꽤나 차별화되는 이 작품만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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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투에서 이기는 것과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다르듯이, 유머와 재치 같은 테크닉만으로는 어디선가 본 캐릭터와 뻔하게 예상되는 사건 전개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익숙함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은 단기적으로 편안함을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적인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기에,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에 대한 섬세한 접근으로 한층 더 깊이가 있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야기로의 지속적 업그레이드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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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셧업앤댄스>는 학원물이다 보니 단순 레트로보다는, 젊은이의 로망이 좀 더 부각되는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클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낭만 스토리를 중심에 둘 것인가도 관전포인트일 듯하다(아무리 소품이라지만 에어로빅 대회 하나만으로는 좀 약한 감이 있다). 인물 구성상 흔해 빠진 학원로맨스는 아닐 테고, 이미 학원폭력물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과연 이 웹툰이 (2000년대 이후 범람한) 몸으로 부딪치는 고자극의 학원일진물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어떤 로망으로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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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상대적으로 외부의 영향이 적고 작가가 좀 더 자기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는, 소품에 그 작가의 본질이 더 잘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반 고흐나 쇼팽의 팬들이 단색 스케치나 피아노 소품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은재 작가도 호평 받고 있는 <셧업앤댄스>를 통해서, 자신의 본질적 강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상 속의 따뜻한 유머와 담백한 낭만을 마음껏 발휘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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