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 삶에 대해 화끈하게 답하다 > 무료웹툰 미리보기 블로그

본문 바로가기

조아툰 얼룩말 - 삶에 대해 화끈하게 답하다 무료웹툰 미리보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705회 작성일 24-05-09 16:42

본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는 생존의 방법론이 중요할 뿐 ‘어떻게’ 살아갈지 여부 같은 건 고민할 여유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사람들, 곧 독자들이 주로 고민하는 문제인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철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호소력 있지만, 아주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너무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 기술적으로 조금만 서툴더라도 진부해지기 십상이다.

 

 

17152405547258.jpg

 

 

웹툰 ‘얼룩말’ 은 과감히 그 위험을 감수했다. 이 만화의 인물 조형과 사건은 매우 직선적이다. 꽉 찬 돌직구 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룩말’ 은 제법 성공적인 이야기다.

 

웹툰은 주인공 ‘한세태’ 가 원래 혼자 살려고 집을 나와 방을 잡았지만, 이런저런 우연히 겹쳐 ‘김우민’ 과 함께 살게 되면서 시작된다. 한세태는 노골적인 이름이 암시하듯 자기 나이대 현대인들의 고민과 방황을 그대로 압축시켜 놓은 듯하다.

 

 

17152405552854.jpg

 

 

본인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세태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공부도 그럭저럭 잘했으며, 대학도 괜찮은 곳을 나온 나름의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청년 취업난 속에서 ‘나름의’ 모범생 정도로는 현실의 역경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백수 처지로 전락했고 뭘 해야 될지도 몰라 그저 게임만 두들기는 잉여인간이 되어버렸다.

 

또 다른 인물인 ‘김우민’ 은 말하자면 세태의 상위호환이자 안티테제다. 우민은 일단 본인 앞가림은 충분히 한다는 데서 세태보다 훨씬 낫다. 한편으로는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데서 세태와 대척점에 있다.

 

 

17152405558187.jpg

 

 

핵심 인물 둘의 설명을 읽어보면, 독자들도 대략 얼룩말이 무슨 내용인지 알 것이다. 부인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전형적인 조형이다. 하지만 얼룩말에는 고유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주장을 아주 강경하게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과 인물들의 입을 빌려 표현되는 주제의식은 확고하다 못해 지나치게 단정적이어서 다소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좋아하는 것, 꿈, 장래희망, 현실의 벽, 생계의 문제, 이런 것들은 먼 미래에 유토피아가 도래하지 않은 이상, 사람들이 벗어나기 힘든 굴레이며 그만큼 어렵고 답이 없는 문제다. 그런데 ‘얼룩말’에서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타협할 수 없는 ‘정답’ 을 내놓는다.

 

 

17152405563921.jpg

 

 

작품이 놀라운 철학적 경지에 도달하여, 독자들은 그저 무릎을 탁 치며 탄복할 수밖에 없는 걸까? 물론 그렇진 않다. 얼룩말이 보여주는 답안지는 교과서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룩말’ 이 충분히 재미있고, 또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데는 두 가지 비결이 있다. 먼저 특유의 개그와 일상을 통한 완급조절을 거론할 수 있을 것 같다. 치열한 갈등 사이사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소소한 웃음을 이끌어내는 개그와 일상 묘사는, 작가의 돌직구를 (비록 그 방향성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독자들이 부드럽게 맞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껄끄러울 수도 있었던 작품의 윤활유로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강경한 인생론에 처한 독자, 정확히는 독자들이 대입할 ‘한세태’ 라는 인물을 둘러싼 환경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민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혹은 작가는) 명확한 정답을 내놓고 세태(독자)에게 그 길을 갈 것을 촉구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선의로 가득 차 있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세태를 ‘옳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수단 역시 다소 무례할지언정 세태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 아니 방향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세태에게, 비록 강권할지라도 그를 향한 선한 마음과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을까.

 

아마 독자들은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비록 교과서적이고 반쯤 강요할지라도 확고한 비전을 제시받은 세태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세태가 들은 '정답' 의 삶은, 그것이 옳은지 여부와는 별개로, 우리 모두가 꿈꾸고 바라는 삶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축복받은 이들을 제외하면 매우 고달픈 길일 것이 분명하기에.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흔들림 없이 그렇게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